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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국가 형성부터 독립까지: 상세 역사

by hustlman03 2025. 5. 16.

 

모로코 국가 형성부터 독립까지: 상세 역사

모로코는 프랑스의 '보호령' 시기를 거쳐 독립을 달성했지만, 그 이전부터 수세기 동안 독립적인 왕국으로서 오랜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프랑스 보호령 시기 모로코가 어떻게 독자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결국 완전한 독립을 쟁취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로코가 독립 국가로 처음 형성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모로코 국가의 탄생: 이드리스 왕조와 초기 이슬람 시대

오늘날 모로코의 기원은 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바스 왕조의 박해를 피해 북아프리카로 도피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인 이드리스 1세(Idris I)는 788년 페스(Fes)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국가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모로코 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이드리스 왕조(Idrisid dynasty)입니다.

이드리스 왕조는 모로코 지역에 이슬람을 확산시키고, 여러 베르베르 부족들을 통합하며 국가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특히 이드리스 2세는 페스를 중요한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로 발전시켰습니다. 비록 왕조가 분열되기도 했지만, 이 시기는 모로코가 아랍-베르베르 문화가 융합된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출발점이었습니다.

2. 강력한 베르베르 제국 시대: 알모라비드와 알모하드

11세기에는 사하라 남부에서 발흥한 베르베르 부족 연합인 알모라비드 왕조(Almoravid dynasty)가 모로코를 통일하고 그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 남부(알-안달루스)까지 확장하며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마라케시(Marrakesh)를 수도로 삼은 알모라비드 왕조는 강력한 군사력과 엄격한 이슬람 교리를 바탕으로 광대한 영역을 통치했습니다.

12세기에는 또 다른 베르베르 부족 연합인 알모하드 왕조(Almohad dynasty)가 알모라비드 왕조를 무너뜨리고 모로코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전역과 이베리아 반도 남부를 아우르는 더욱 강력한 제국을 세웠습니다. 알모하드 왕조는 마라케시와 세비야 등지에 웅장한 건축물을 남겼으며, 이 시기는 모로코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때로 기록됩니다.

3. 이후의 왕조들과 독립적인 왕국의 지속

알모하드 제국이 쇠퇴한 후, 13세기에는 마리니드 왕조(Marinid dynasty)가 모로코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마리니드 왕조는 페스를 수도로 삼아 문화와 학문을 장려했으며, 이 시기 모로코는 지중해 무역의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15세기에는 마리니드 왕조의 뒤를 이어 와타스 왕조(Wattasid dynasty)가 들어섰습니다.

16세기에는 사디 왕조(Saadi dynasty)가 포르투갈의 침입을 물리치고(알카세르 케비르 전투) 모로코의 독립을 수호했으며, 팀북투를 정복하는 등 사하라 무역을 장악하며 번영을 누렸습니다. 현재 모로코의 통치 왕조인 알라위 왕조(Alaouite dynasty)는 17세기 중반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알라위 왕조는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외세의 도전을 막아내며 모로코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모로코는 8세기 이드리스 왕조 이래로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를 거치면서도, 외세의 간섭 속에서도 비교적 독립적인 왕국으로서의 명맥을 수세기 동안 이어왔습니다. 이러한 긴 독립의 역사는 20세기 프랑스의 보호령 통치에 맞서 주권을 지키고 독립을 되찾으려는 모로코 국민들의 강한 의식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4. 보호령의 성립 배경: 약화된 주권과 유럽 열강의 각축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모로코는 내부적인 정치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유럽 열강들은 모로코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이웃 식민지인 알제리와의 국경 안정 및 경제적 이익을 위해 모로코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여러 차례의 외교적 위기(예: 탕헤르 위기, 아가디르 위기)를 거치면서 프랑스는 모로코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게 됩니다. 결국 1912년, 당시 술탄이었던 압드 알-하피드(Abd al-Hafid)는 프랑스와 페스 조약(Treaty of Fez)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모로코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고, 이는 모로코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5. '보호령'의 성격: 간접 통치와 제한된 주권

페스 조약으로 성립된 프랑스 보호령은 알제리와 같은 직접적인 식민지배와는 형태가 달랐습니다. 프랑스는 모로코를 자국 영토로 공식적으로 합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프랑스 정부가 임명한 레지던트-제네랄(Resident-General)이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서 외교, 국방, 주요 행정 및 경제 정책을 총괄했습니다.

하지만 명목상으로는 모로코의 술탄이 국가 원수로서의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술탄은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가졌고, 프랑스의 통제 아래에서 일부 내부 행정에 대한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이러한 '간접 통치' 방식은 모로코의 전통적인 통치 구조와 사회 질서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않았으나, 실질적인 주권은 프랑스에 의해 심각하게 제한되었습니다.

스페인 역시 모로코 북부와 남부 일부 지역에 대한 보호권을 확보하여 스페인 보호령을 수립했습니다. 이로써 모로코는 프랑스와 스페인에 의해 분할 통치되는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6. 독립을 향한 저항과 민족주의의 부상

프랑스의 보호령 통치에 대한 저항은 보호령 수립 초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틀라스 산맥과 리프 산맥 등지에서는 무장 봉기가 일어났고, 이는 프랑스 군대에 의해 진압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1930년대부터는 새로운 형태의 저항, 즉 정치적 민족주의 운동이 부상했습니다. 젊은 지식인과 도시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모로코의 주권 회복과 근대화를 목표로 하는 정치 단체들이 결성되었습니다. 이들은 신문 발행, 청원서 제출, 시위 등을 통해 프랑스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모로코 독립 운동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전쟁 중 프랑스의 약화된 위상과 연합국의 자유와 자결 원칙 강조는 모로코 민족주의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특히 1943년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가 술탄 무함마드 5세에게 독립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는 소문은 모로코 국민들의 독립 열망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7. 무함마드 5세와 민족 운동의 연대

전후 모로코의 독립 운동은 술탄 무함마드 5세(Sultan Mohammed V)를 중심으로 빠르게 결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프랑스와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무함마드 5세는 점차 민족주의 세력의 요구를 수용하고 독립을 향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1944년, 주요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독립 선언서(Manifesto of Independence)를 발표하며 프랑스 보호령의 종식과 완전한 독립을 공식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이 선언서는 술탄 무함마드 5세에게 전달되었고, 술탄은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1947년, 무함마드 5세는 탕헤르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통해 모로코의 아랍 세계와의 유대와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강력히 피력했습니다. 이는 프랑스 당국과의 긴장을 고조시켰고, 프랑스는 술탄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8. 왕의 유배와 '왕과 인민의 혁명'

독립 운동의 구심점이 된 무함마드 5세의 영향력이 커지자, 프랑스는 그를 제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53년 8월, 프랑스는 무함마드 5세를 폐위시키고 그의 친척인 무함마드 벤 아라파(Mohammed Ben Aarafa)를 새로운 술탄으로 옹립했습니다. 무함마드 5세와 그의 가족은 코르시카를 거쳐 마다가스카르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모로코 전역에서 '왕과 인민의 혁명(Revolution of the King and the People)'이라 불리는 대규모 저항 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프랑스가 내세운 벤 아라파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무함마드 5세의 복위를 요구하는 시위, 파업, 무장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시기 모로코의 저항은 프랑스 통치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습니다.

9. 독립을 향한 협상과 최종 선언

모로코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과 국제 사회의 압력에 직면한 프랑스는 더 이상 보호령 통치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1955년, 프랑스 정부는 무함마드 5세와 협상을 시작했고, 그를 모로코로 귀환시키는 데 동의했습니다.

1955년 11월, 무함마드 5세는 모로코로 극적으로 귀환했으며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의 귀환은 독립 달성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이후 프랑스와 모로코 대표단 간의 독립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마침내 1956년 3월 2일, 프랑스와 모로코는 파리에서 공동 선언문에 서명하며 프랑스 보호령의 종식과 모로코의 완전한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스페인 또한 같은 해 4월 모로코 북부 지역에 대한 보호권을 포기하며 모로코는 분단된 영토를 통합하고 완전한 자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로 재탄생했습니다.

결론: 오랜 역사와 독립 국가의 여정

모로코는 8세기 이래로 천년 이상 독립적인 국가로서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비록 20세기 초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지만, 이는 직접적인 영토 합병과는 다른 형태였으며, 모로코는 고유한 왕실과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랜 독립의 역사와 보호령 시기 끈질긴 민족 운동이 결합하여, 모로코는 결국 1956년 완전한 주권을 회복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독립 국가의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